초화류의 혼식

정원에서 초화류는 꽃피는 식물의 중심이 되며 초화류의 꽃은 색을 의미한다. 그러나 색만으론 단순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에 형태와 질감, 그리고 초장이 다른 식물로 변화를 준다. 초화류는 같은 종류의 꽃을 가득 모아 군식하면서 이웃에 다른 종류의 꽃들도 군식하여 식재한다. 이런 방식으로 만든 꽃밭은 충분히 아름답지만, 단순한 꽃의 형태를 가진 튤립이나 아이리스 등을 같은 종류로만 모아 심으면 심심한 느낌이 든다. 이럴 경우 튤립이나 아이리스와 잘 어울리는 형태나 초장, 개화기, 색을 가진 꽃을 사이 사이 혼합해 심어 주면 전혀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색도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다.

 
 영국 - 포피, 수레국화, 마가렛 등

영국 - 알리움, 에린지움, 살비아 등

영국 - 포피, 수레국화 등

출근길에 매년 봄이면 시골집 담 옆에 키 작은 노랑 아이리스와 씀바귀가 혼합되어 꽃피는 것을 본다. 아이리스 사이사이의 씀바귀는 잡초처럼 아무렇게나 피어있을 때완 전혀 다른 느낌을 주어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봄에 한택식물원을 갈 때면 분홍 얼레지와 연파랑 현호색이 같은 공간에서 아름다운 색과 형태를 보여주고 파랑 무스카리와 노랑 산괴불주머니는 강한 대비색을 보여 준다. 아침고요수목원엔 튜울립 사이사이로 다양한 색의 네메시스가, 그리고 무스카리와 꽃잔디가 혼식되어 밋밋한 화색을 더욱 화려하게 대비시켜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침고요수목원- 튤립과 꽃잔디

한택식물원 - 5월 무스카리와 산괴불주머니

한택식물원 - 4월 얼레지와 현호색

아침고요수목원 - 튤립과 네메시스

꽃밭에 초화류를 혼식할 때는 초장, 형태, 색, 질감과 같은 시각적 특성과 광, 온도, 수분, 토양과 관련된 생육특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특히 식물에서 방출되는 화학물질이 이웃 식물의 생육을 저해하여 같은 공간에 여러 식물을 같이 심으면 생육이 좋지 않은 식물의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을 고려해야 한다. 또 다년초일 경우 같은 공간에 여러 식물이 뿌리를 묻고 있기 때문에 점유하는 토양층의 깊이가 같을 경우 같은 공간에서 살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초화류의 혼식을 위해 시각적인 모습만으로는 식물을 선정하기 어렵다. 국내에는 이러한 자료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경험이 많은 몇몇 가드너들에게만 축적된 노하우이므로 초화류 혼식을 위해 이러한 자료들이 많이 알려져야 할 것 같다.

외국에는 정원을 비롯한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위한 혼합 종자(Seed Mixtures)를 판매하는 회사들이 많다. 대체로 정원용 꽃(garden flower), 야생화(wildflower), 자생 그래스류(native grass)로 나누어져 있는데 미국과 같이 넓은 나라에서는 각 지역의 기후에 맞는 꽃들로 혼합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일정한 초장을 가진 꽃들만 포함시키기도 하고, 습지식물로만 혼합되어 있는 것도 있다. 또 일년초만 혼합한 것도 있고 다년초만 혼합한 것도 있다.

국내에서 혼합종자는 법면 녹화용 잔디나 그래스류를 중심으로 혼합된 종자가 가장 많으나 초화류를 중심으로 혼합한 종자를 판매하는 업체도 몇군데 찾아볼 수 있다. 고속도로 절개지나 비탈면의 식생녹화를 위한 식물배합시 수레국화나 샤스타데이지, 코레옵시스와 같은 꽃들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으며 ‘우리꽃’에서는 혼합종자 우리법면 3호(Mixture seed 'URI 3')와 4호(Mixture seed 'URI 4')를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고, 색이 다른 혼합 서양톱풀 (Achillea millefolium 'Colorado’ Mixture)이나 페스티발 스카이(Mixture seed 'Festival Sky'), 페스티발 스프링(Mixture seed 'Festival Spring')과 같이 외국에서 수입한 혼합종자를 판매하면서 다양한 공간을 단기간에 화려한 혼합꽃들로 물들이는 작업도 해주고 있다. 인터넷에서 경관용으로 꽃양귀비를 포함한 혼합종자를 판매하는 몇몇 업체도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전 평택 공설운동장 둘레 경사지에 혼합종자를 살포하였다. 첫 해 빨강 포피와 파랑 수레국화, 노랑 코레옵시스 등이 만발하여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뭄시 관수가 불가능하였고 장마기엔 잡초에 묻혔고 그 다음해엔 건조에 강한 코레옵시스와 양귀비가 드문드문 남아 있었는데 또 그 다음해엔 제초작업시 모두 없어져 버렸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영국 - 니겔라와 Limnanthes douglasii

독일 2011 BUGA - 분홍, 흰색, 하늘색으로 혼합된 꽃들

독일 2011 BUGA - 아마란서스, 백일홍, 코스모스, 코레옵시스, 맨드라미 등

프랑스 -Verbena bonariensis와 Pennisetum villosum, 가우라, 살비아 등

독일 2011 BUGA - 매리골드, 코스모스, 살비아 등
 

영국 왕립원예협회(RHS)에서 출판한 식물조합 백과사전(Encyclopedia of Planting Combinations)에 보면 식물마다 완벽한 파트너(perfect partners)라면서 같이 심을 수 있는 식물을 추천하고 있으니 초화류 혼식을 위해 당분간 이 책을 참고하거나 식물원이나 여러 정원들을 방문할 때마다 어떤 식물들이 혼식되어 있는지 관찰하고 또 혼합종자에 포함된 식물들을 체크해보면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든인 21014. 7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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