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정원(Winter Garden)

겨울정원은 단어 그대로 겨울의 정원이다. 그렇지만 외국에서 겨울정원 즉, 윈터 가든(winter garden)이라고 할 때는 미국 뉴욕시의 윈터 가든 아트리움(Winter Garden Atrium)이나 영국의 세필드 윈터 가든(Sheffield Winter Gardens)과 같이 윈터 가든이란 이름이 붙여져 있는 온실 정원을 말할 때도 있다.

1년 단위로 계절이 바뀌는 온대 지방에서는 가을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나무나 풀도 있고, 잎이 누렇게, 붉게 또는 짙은 갈색으로 변색한 채 낙엽지지 않는 나무나 풀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부분 잎이나 꽃이 수명이 다하거나 시들어 녹색에서 다른 색으로 변색하거나 구부러지거나 뒤틀리면 다음 계절을 기약하며 잘라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겨울이 채 되기도 전에 낙엽은 깨끗하게 쓸어 모아지고 다년초들은 밑동만 남기고 잘려진다. 그러면 겨울의 정원은 잘 정리되고 깨끗한 것 같지만 텅 비고 황량해진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실습정원에는 다년초가 많은데 가을에 시들고 변색해도 자르질 않고 그대로 겨울을 보내고 봄에 새순이 나기 전에 잘라 정리를 한다. 다음 해에 교육할 학생들이 정원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도록 하는 목적도 있지만, 다양한 색과 형태로 변한 다년초들이 가득 찬 겨울정원은 정리가 된 텅 빈 정원보다 자연스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마른 풀 위에 눈이라도 쌓이면 또 한번 색다른 정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작년 가을에 학교 전체 정원을 관리하는 조경팀 직원들이 낙엽을 긁어 모우다 내 일을 덜어준다고 내가 없는 새 정원의 다년초들을 깨끗하게 정리를 해버려 실랑이를 한 적이 있다. 모두들 깨끗하게 정리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앙보와 성(chateau d'Amboise)

영국 로즈무어 가든

영국 로즈무어 가든

영국 로즈무어 가든

영국 로즈무어 가든





영국 로즈무어 가든

영국 로즈무어 가든

유럽에 있을 때 겨울에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등 여러 나라의 유명 가든(garden)을 많이 방문하였다. 소규모 가든은 겨울에 많이들 폐장하지만 입장료가 주요한 수입원인 유명 가든들은 겨울에도 관람객이 있으면 경영에 유리하므로 연중 무휴인 가든이 많다. 한국과 비교해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이 따뜻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겨울에도 파란 잔디를 심기 때문에 잔디는 겨울정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데번(Devon)에 있는 영국왕립협회 소속의 로즈무어 가든(Rosemoor garden)을 방문한 그 날은 비도 오고 눈까지 내렸다. 파란 잔디와 낙엽이 져 수형이 드러난 아름다운 낙엽수들과 잎이 파란 상록수들, 그리고 여러 색으로 변색되면서 말랐지만 무리져 있는 많은 다년초들, 특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래스류로 가득찬 로즈무어 가든에서 아름다운 겨울 정원을 보았다. 특히 눈오는 겨울에 시비리카 말채나무의 붉은 줄기는 눈이 부시게 빨갛고, 애기사과를 비롯한 붉은 열매가 달린 유실수는 겨울 정원의 백미였다. 그 해 겨울 영국왕립원예협회의 가든 잡지(The garden)는 겨울정원의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하고 겨울 정원의 기쁨(winter garden delight)이란 말을 표지에 실으면서 겨울정원 한 곳을 소개한 것을 보았다.

정원을 디자인할 때는 식물이 4계절을 지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염두에 두어 식물을 선정하고 배치할 자리를 정해야 하는데 특히 겨울을 지나는 식물의 크기와 형태, 색, 질감을 잘 고려하면 황량하고 심심한 겨울정원을 풍성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몇 년 전에 서울 성북동의 한 500평 단독주택의 정원을 보수하는 일을 맡은 후배를 따라 현장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다. 주택을 지으면서 3억을 들여 정원을 만들었는데 겨울에 정원이 너무 썰렁하다고 1년만에 다른 업체에 정원을 보수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었다. 여름에 본 정원에는 자작나무와 나무수국이 가득 차 풍성하고 아름다웠지만 상록수가 적고 식물의 종류가 단조로워 낙엽이 지면 경사지에 있는 집안이 다 들여다보이고 썰렁하기 때문이었다. 후배는 자작나무와 나무수국을 많이 제거하고 3m가 넘는 아름다운 에메랄드 그린 측백나무와 스카이로켓 향나무를 여러 주 심고 또 에메랄드그린으로 울타리를 만들어주거나 블루베리 등의 유실수와 아름답고 새로운 종류의 다년초를 많이 심어 주었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놀 수 있게 통로를 교체하는 작업까지 포함해 약 1억7000만원 견적의 보수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정원일을 의뢰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였다.

겨울정원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는 다양한 정원식물의 겨울 모습과 봄, 여름, 가을에는 풍성한 잎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정원의 건축적인 요소들과 정원의 첨경재료들이다. 특히, 생울타리와 토피아리, 그리고 정원의 조형물들은 겨울에 뚜렷하게 드러나 보인다. 상록수로 만든 생울타리와 토피아리는 특히 겨울에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이고 낙엽수로 만든 생울타리 또한 전정으로 인한 치밀한 가지의 구조를 드러내면서 가지 사이로 아른아른 보이는 풍경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정원 곳곳에 배치된 연못이나 조형물 등은 그야말로 겨울 정원의 중요한 볼거리이다. 그래서 어떤 정원들은 일부러 이러한 요소들을 더 많이 만들기도 한다.

겨울에 방문하면 산에 간 것과 비슷한 느낌의 썰렁한 한국의 가든, 식물원, 수목원 등의 전문 가든과 일반인들의 주택 정원에 보다 새롭고 풍성한 겨울 정원이 들어서면 좋겠다. 유럽의 여러 겨울 정원의 모습을 사진으로 소개한다.

가든인 2013.12월호 게재

영국 로즈무어 가든

영국 로즈무어 가든



프랑스 빌랑드리성



영국 로즈무어 가든





영국 로즈무어 가든